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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태석 신부 - 명의와의 만남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후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살레시오회에 입회해서 광주가톨릭대학에서 공부했으며, 2001년 사제서품을 받고 2008년 11월까지 남부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톤즈 마을에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한센병을 비롯한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보살폈으며, 학교와 기숙사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이 자립하도록 도왔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2006년 11월 제7회 인제인성대상 특별상, 2007년 3월 제23회 보령의료봉사상, 2009년 12월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을 받았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 봉사활동을 떠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30여 년간 남수단에서 활동해온 제임스 신부를 만나, 나이로비에서 2,800km 떨어진 남수단에 와서 주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고 선교사로 생활하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이태석 신부는 2001년 서울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곧 톤즈로 날아가, 진료소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톤즈엔 하루 200여 명의 환자가 찾아오는 진료소와 나환자 병동이 따로 있었습니다. 전쟁고아와 기숙 학생 등 150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와 800여 명의 학생이 공부하는 학교도 있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진료소 일 외에도 1주일에 한 번씩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이동진료도 했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톤즈에서 별명은 '쫄리'였습니다. '쫄리'는 그의 세례명인 존(john, 요한)과 성씨인 '이'(李)를 합쳐 부르는 말입니다. 톤즈의 아이들은 낮 2~3시면 어김없이 이태석 신부의 진료소로 몰려와서, 춤추고 노래하며 놀았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밴드를 운영하며 음악선생 노릇까지 했는데, '꼼보니'라는 복음성가도 작곡할 정도로 음악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즐거운 노래, 찬미의 노래를 다 함께 불러요. 꼼보니는 평화의 사도, 꼼보니는 아프리카의 아버지,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네…."라는 이 노래는 톤즈의 시민가요가 되었습니다. 또 이태석 신부는 북수단과 남수단의 평화회담에 맞춰 '너에게 평화를 주리라'는 노래도 작곡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살레시안으로서 질병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심성을 보살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오랜 전쟁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폭력적이었습니다. 칼을 들이대고 선생님들을 협박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교육을 통해 양처럼 공손하게 변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면서 가진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톤즈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건 음악을 가르치건 그 과정이 진정 행복한 것은 아이들이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국 젊은이들에게 "많은 젊은이들이 봉사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바램을 털어놓았고 "봉사는 삶의 질을 높이고 자아 실현에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습니다.